'비로자나불'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9.10.09 태고종 총본산 봉원사_2019.2.7
  2. 2018.10.28 지리산 화엄사 노고단코스 20.06Km
  3. 2017.08.23 용인 와우정사
  4. 2017.04.24 장흥 보림사 비로자나불
  5. 2016.05.23 북한산 둘레길 걷기
  6. 2016.05.13 와우정사(용인) 1
  7. 2015.12.29 제주 약천사

태고종 총본산 봉원사_20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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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때 처가집에 왔다가 

근처에 큰 절이 있다기에 구경왔다.


아........모르고 왔는데....태고종 총본산이었구나!!




나한들이 좀 무섭다.


대웅전에는 정초라 공들이는 신도들이 많아서 들어가진 못했다.


삼천불전이라....


해태상이....




삼천불전에 거대한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있고....이천불이 있다.




정초라 신도들이 많다.


극락전이면 아미타불이 주불인데....봉원사에는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모두 모셔져 있구나!!






대웅전에 공들이고 있는 신도들!!




수위안좌인 : 존귀한 분을 모신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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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 노고단코스 20.0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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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등산
화엄사 -> 노고단  -> 연기암 -> 화엄사   
 
가을과 겨울을 오갔다 왔네요. 
 
아래는 비가왔다 해가 나왔다 하더니
1507m 높이의 노고단에 우박과 함께
강풍이 불어 나무가 얼어붙었더군요. 
 
 
20.06 km를 걸었습니다.
걸음으로는 3만5천보를 넘겼고요. 
 
화엄사도 참으로 오랫만에 가봤지만
기억이 잘못된 듯 많이 바뀐 듯.. 
 
아는만큼 보인다고
과거 불교에 대해 
지금보다 문외한이었을 때 봤던 거라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겠지만요. 
 
가을을 만끽하고 왔습니다.

============================================================

#지리산 을 몇 차례 가긴 갔었는데

다녀온 코스를 잘 모르겠다.  

혼자 #천왕봉 도 갔다오고...#바래봉 도 갔었는데...

어느 코스로 해서 어디로 갔었는지 기억이...ㅠㅠ


그래서 이제부터 제대로 기록을 하면서 지리산을 다녀볼 생각이다.

지리산 종주를 해볼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 체력이야 충분한데...ㅎ

먼저 지리산 종주를 할때 시작점인 코스부터 다니기 시작하면.....기억하기도 좋고....



가을이 절정일 때 다녀올 생각으로 

10월27일 토요일에 친구1명과 화엄사로 출발했다.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여주기도...


하산시 들리기로 하고서 그냥 통과






오산에서 온 4명의 여학생








손각대로 최대한 흔들림이 없도록...








나도 한컷^^


노고단 탐방로는 사전예약를 한 경우만 갈 수 있지요^^


노고단대피소부터 우박이 떨어지더니...

여긴 눈꽃, 얼음꽃이 피었네요.


여기서 자켓을 꺼냈어야 했는데...그냥 버티다가...

하산때 온몸이 얼었어요.


안개가 끼어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오산에서 온 학생들!!


추워서 푹 놀러쓴 모자와 함께 폼이 노숙자 같다했더니 빵 터졌죠


얼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배경이 안보여요



맑은 날은 저렇게 멀리 보일텐데...


난간에도 얼음꽃이 피었어요






바람도 심하게 불고..







하산시에는 추워서..ㅠㅠ







도시락을 먹으면서 올려다본 하늘^^





도시락 먹던 곳 옆 나무에 저렇게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 지어져있네요


연기암 가는 길..



문수보살님...아마도 지혜, 학업, 시험 등을 관장하시는 보살님이신 듯...


한자를 안보다보니...알던 글자도 잊어버리고...대확상적광전...맞나??


고3짜리....딸이 생각나서...이번 대입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밀어본다.




화엄사 뒤길에 조그만한 감이 주렁주렁 열려 이쁘다.


왼쪽부터...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물어서 들었는데...잊었다)

관을 쓰고 계신 것이 보살...아니신가?


앗! 뭔가 이상하다.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주불이 석가모니불인데....여긴 비로자나불이 주불로 모셔졌는데...

이것 물어봐야겠다.


각황전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왼쪽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다보불....다보불은 처음 들어본다.

목조칠존상(삼세불과 문수/보현/지적/관음보살)


어안렌즈로 담아봤다


각 황 전








왜 대웅전에 비로자나불인가 싶어서 어안렌즈로 한컷 확인



대웅전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하다 발견한 안내문...ㅎㅎ




문수동자 :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좌보처로 지혜를 맡고 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자를 타고있다 


보현동자 :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우보처로 진리의 광대행을 맡고 있으며 행원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다


친구 속도가 좀 늦다보니 시간을 좀 많이 걸렸다. 

혼자 다닐 때 보다 2차례의 식사시간에 휴식시간이 길었고, 

연기암과 화엄사를 오래 천천히 둘러본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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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와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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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만에 다시 들린 와우정사!  

대한불교열반종 총본산



지난 방문에 자세히 담았기에 이번엔 다 돌지 않았다.

더 많은 와우정사 사진은 지난 방문 사진이 나을 듯 싶다 ==> http://sybae.tistory.com/981








누워 계신 부처님!












왼쪽부터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이나 생신()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 ≫의 교주이다. 석가모니불을 응신(: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나 행위 경계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 안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자마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게 되며,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에게 비로자나불의 무량한 광명에 의지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게 예배하고 귀의 순종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 속에서 현실계의 상황을 스스로의 눈에도 비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보살행()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형체가 없는 비로자나불이 보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형체 있는 것으로 화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보살행이, 깨달음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우리 나라 사원에서 이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殿) 또는 대광명전(殿)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또 비로전(殿) 또는 화엄전(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법당 안의 비로자나불상은 보통 지권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미타불

무량수나 무량광이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는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구히 표현한 것이 되었다.

다만, 이 경우 원시불교나 부파불교의 불타관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견지에서 설해진 것이 특색이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으로 직시되고 대승불교에 의해서 구원불로서 존숭되었던 때에 출현된 부처로 보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제로 한 경전으로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이 있다. 이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일찍이 세자재왕불()이 이 세상에 있을 때 법장()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

그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을 세웠다. 그는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겁() 전의 일이다.

그 뒤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의 대표적인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48대원()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면, ①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의 불행이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나’와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을 것, 내 국토에 나는 이는 이 생에서 바로 정정취()에 들어가서 바로 부처를 이룰 것, 내 광명은 한량이 없어 적어도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 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또 내 수명은 한량이 없어 백천억 나유타 겁으로도 셀 수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의 목숨이 한량이 없을 것,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내 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가서 나려고 하는 이는 열 번만 내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가서 나게 될 것, 보리심을 내어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발하여 내 국토에 가서 나려는 이는 그가 죽을 때 내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 사람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고 내 국토에 가서 나는 보살들은 모두 나라연천()과 같은 굳센 몸을 얻게 될 것, 내 국토는 땅 위나 허공에 있는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시냇물이나 연못이나 화초나 나무나 온갖 물건이 모두 여러 가지 보배와 향으로 되어 비길 데 없이 훌륭하며, 그 물건들에서 나는 향기는 시방세계()에 풍겨 그 냄새를 맡는 이는 모두 거룩한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될 것이다.

또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이 내 광명에 비추기만 하면 그 몸과 마음은 부드럽고 깨끗하며 하늘 사람보다도 뛰어날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사람들은 옷입을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옷이 저절로 몸에 입혀지되 바느질한 자취나 물들인 흔적이나 빨래한 자국이 없을 것, 다른 세계 보살로서 내 이름을 들은 이는 부처님 법에서 물러나지 아니할 것 등이다.

이와 같은 본원들은 일체중생을 건지려는 보살정신의 극치이다. 아미타불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완성은 물론, 그 정신적 완성의 환경인 국토의 장엄, 물질적인 완성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어떠한 신앙보다도 이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6, 7세기경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미타신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신라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 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공로자로는 원효()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토교를 보급하기 위해 신라의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저서들을 남겼다.

원효 이후의 많은 신라 교학승()들도 미타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삼국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전몰자들의 왕생을 비는 기도는 자연히 아미타불에 귀의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미타불상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미타불 [阿彌陀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석가모니불

인도의 카필라(Kapila)국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의 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부인은 그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돌아가고 그 후 태자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장하여 이웃 나라의 야쇼다라 공주를 태자비로 삼고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그러나 젊은 날의 태자는 평범한 왕자로서 일생을 살기보다는 삶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 더 골몰했다. 그러던 그는 29세가 되던 해의 어느날 마침내 출가를 결행하였다.

출가한 뒤 6년여 동안 여러 스승을 찾아 다니며 배우기도 하고 혹독한 고행도 해 보았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수행방법을 중도로 바꾸어 부다가야(Buddha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조용한 명상에 들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지 이레 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수행자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마침내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된 것이다.

그 후 부처는 베나레스의 교외인 녹야원으로 가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들을 대상으로 초전법륜을 말하고, 45년 동안 인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하며 교단을 일으켰다.

노쇠해진 부처님은 80세가 되던 해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고요한 열반에 드셨다. 마지막 설법에서 석존은 “자신이야말로 등불이며 법이야말로 등불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긴다. 이 점은 불교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부처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나아가 그는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내고자 한량없는 지혜와 무한한 자비심을 나타내 보인 도덕적 완성자였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의 신행대상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다만 그 부처님은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는 제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깨달은 진리의 발견자로서, 존경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찬사는 그를 지칭하는 열 가지 별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실로 그는 고귀한 자[], 존경할만한 자[], 완전한 현자[], 지혜와 덕행의 완성자[], 다시는 생사해[]에 나오지 않을 복된 자[], 세상의 일체를 다 아는 자[], 제신과 인간의 스승[], 인간의 자기극복에의 독보적 안내자[調], 그리고 불세존()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아 아는 자’의 의미와 ‘그 진리를 뭇 중생들을 위해 널리 펴신 분’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불교란 바로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행양식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멸 후 불교 교단 내에서는 새삼 부처님이란 누구인가, 불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를 둘러싼 견해차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불타관은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라는 불교의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로 변천되었다.

5세기 무렵 북인도에서 출생한 아상가(무착)와 바수반두(세친) 형제의 저작으로 알려진 일련의 유가행 유식학의 논서들에서 삼신설()로 정리되면서 일단 이론적으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를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논서들로는 미륵송(), 세친석()으로 알려진 ≪대승장엄경론≫과 ≪구경일승보성론≫을 들 수 있다.

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자성신(,svābhāvika-kāya)·수용신(, Sā○bhogika-kāya)·변화신(nairmā○ika-kāya)이며, 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실불(svābhāvika-kāya)·수법락불(, sāmbhogika-kāya)·화신불(nairmā○ika-kāya)과 법신(dharma-kaya)·보신(sabhoga-kāya)·화신 또는 응신(nairmā○ika-kāya)이 곧 그것이다.

이 두 논서에 언급되고 있는 삼신은 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적으로 중복되는 개념이다. 물론 내용으로는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이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이라고 이름한 ≪보성론≫의 삼신관을 따르고 있으나 이론적 명확성은 오히려 ≪장엄경론≫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엄경론≫의 설명에 따르면 “자성신과 수용신과 변화신은 실로 모든 부처의 몸을 구분한 것이며, 제1신은 다른 두 신의 소의()이다.”.

이를 다시 세친은 “모든 부처에는 삼신이 있다. 자성신은 법신으로서 전의()를 특질로 한다. 수용신은 이에 의해 회중륜()에서 법의 수용을 이루는 것이며, 변화신은 그 변화에 의해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섭대승론≫은 “이 중에 자성신이란 여러 여래의 법신이다. 모든 법에 있어서 자재전()의 소의()이기 때문이다. 수용신이란 부처의 각종 회중륜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법신을 소의로 하여, 청정한 불토와 대승의 법을 향수()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신이란 법신에 의지하여 도솔천에 있는 천궁()에서 전생()하고, 태어나고, 욕심을 행하고, 출가하여 외도()가 있는 곳에서 수행하고, 고행을 이루고, 보리를 증득하고, 법륜을 굴리고 대열반에 들어 가기 때문이다.”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3의 변화신이 바로 석존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신설의 상호관계는 깨달음의 본체로서 법신과 수많은 공덕의 과보로 받은 몸이라는 의미의 보신, 그리고 지혜와 자비심을 본질로 하는 ‘깨달음’을 중생 이익을 위해 회향하려는 목적에서 현세로 몸을 나투신 화신 또는 응신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관계를 ≪화엄경≫이나 ≪대승기신론≫ 등에서는 좀더 알기 쉽게 체()·상()·용()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즉 진여의 체는 법신으로, 상은 보신으로, 용은 화신 또는 응신으로 대비해서 해석하려는 입장이 곧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단 화신불로 이해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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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보림사 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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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대적광전 철제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는 곳이 상당히 적은 것 같습니다.

몇군데에서 보긴 했었는데...


보림사는 대웅보전과 함께 대적광전이 있더군요. 신기 ㅎ

*대웅보전 :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대적광전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


신라시대때 비로자나불입니다.


============================================================

강진 남미륵사를 다녀오는 길에 낯익은 이정표가 눈에 보인다.

보림사!!!

어디서 들었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언젠가 친구가 추천해서 가족 휴가중에 들렸던 곳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찾아봤습니다.

찾아보니 2008년 7월에 가봤더군요.     http://sybae.tistory.com/954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대웅보전 :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초파일때 불을 밝힐 코끼리와 북, 연꽃등은 비닐로 쌓아 두었더군요.



병풍처럼 절을 감싸고 있는 산이 아늑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대적광전 :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교주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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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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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을 6년여전에 걸었던 코스를 그대로 다시 걸어봤다.

집에서부터 우이동까지...10.5Km...

중간에 숲속에서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는 시간까지 5시간 48분 걸렸다.


헐...메타정보가 손상되어 버렸네..ㅠㅠ...(2016.5.19)





아마 찔레꽃이죠...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한번 제대로 못와봤다.



예전엔 스탬프 찍는 곳 등이 없었는데...우체통처럼 생긴 곳에 스탬프가 있었다.



찔레꽃이 예쁘다.



저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오봉, 자운봉 등




삼각산(북한산) 만경대와 인수봉도 보이고..


북한산과 도봉산을 함께...



수락산





화계사 범종각의 4물......범종,법고,목어,운판이 모두 있다.


법고는 모든 축생을 위해, 목어는 바다 생물,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물을 위한다고 한다.


날짐승을 위한다는 운판이다.


화계사 대적광전...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이 모셔져있다.








아카시아꽃을 닮았는데...무슨 꽃이지...??





주말농장 텃밭이 많다.


여긴 유치원, 어린이집 텃밭인가보다. 애들에게 농작물이 커가는 것을 보여주려나 보다.




곧 도봉산을 넘어가 보려는 생각에...코스 확인차 한컷


4.19 기념공원



솔밭공원의 호수에서..






만고강산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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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정사(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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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전쯤 가봤던 곳을 다시 가봤더니, 그간 훨씬 아름다운 사찰이 되어있었다.










































비로자나불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광명()의 부처이다. 범어 바이로차나(vairocana)를 음역하여 비로자나라고 한다.

법신은 빛깔이나 형상이 없는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처를 신()이라고 하였을망정 평범한 색신()이나 생신()이 아니며, 갖가지 몸이 이것을 근거로 나오게 되는 원천적인 몸을 뜻한다.

이 부처님을 형상화시킬 때는 천엽연화()의 단상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왼손은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들고 있다. 불상의 화대() 주위에 피어 있는 1,000개의 꽃잎 하나하나가 100억의 국토를 표현한 것으로, 이 부처님이 있는 세계의 공덕무량함과 광대장엄함은 헤아릴 길이 없음을 조형화한다.

또, 큰 연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 가운데에는 우주의 만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하여 흔히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는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 ≫의 교주이다. 석가모니불을 응신(:세상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삼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때와 장소 및 사람 등에 따라 가변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미혹에 결박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일심으로 생각하고 맑은 믿음으로 의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즉, 중생이 진심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희구하는 바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나 행위 경계에 따라 때를 놓치지 않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어느 곳, 어느 때나 알맞게 행동하고 설법하며, 여러 가지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은 항상 여러 가지 몸, 여러 가지 명호, 여러 가지 삶의 방편을 나타내어 잠시도 쉬지 않고 진리를 설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엄경≫ 안에서의 비로자나불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석가모니불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자마자 비로자나불과 일체를 이루게 되며, 그 깨달음의 세계를,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에게 비로자나불의 무량한 광명에 의지하여 설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비로자나불에 의해서 정화되고 장엄되어 있는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의미한다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 세계 속에 있는 우리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게 예배하고 귀의 순종함으로써, 부처님의 지혜 속에서 현실계의 상황을 스스로의 눈에도 비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로자나불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은 보살행()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이는 형체가 없는 비로자나불이 보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서 형체 있는 것으로 화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최고의 깨달음으로 향하는 보살행이, 깨달음 그 자체인 비로자나불에게로 돌아가는 길인 것이다.

우리 나라 사원에서 이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殿) 또는 대광명전(殿)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또 비로전(殿) 또는 화엄전(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법당 안의 비로자나불상은 보통 지권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그러나 고려 말기부터는 이 지권인이 변형되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이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로자나불 [毘盧遮那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아미타불

무량수나 무량광이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는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구히 표현한 것이 되었다.

다만, 이 경우 원시불교나 부파불교의 불타관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대승불교 보살사상()의 견지에서 설해진 것이 특색이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으로 직시되고 대승불교에 의해서 구원불로서 존숭되었던 때에 출현된 부처로 보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제로 한 경전으로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이 있다. 이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일찍이 세자재왕불()이 이 세상에 있을 때 법장()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

그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을 세웠다. 그는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겁() 전의 일이다.

그 뒤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의 대표적인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48대원()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면, ①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아귀·축생 등 삼악도()의 불행이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나’와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을 것, 내 국토에 나는 이는 이 생에서 바로 정정취()에 들어가서 바로 부처를 이룰 것, 내 광명은 한량이 없어 적어도 백천억 나유타 부처님 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또 내 수명은 한량이 없어 백천억 나유타 겁으로도 셀 수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의 목숨이 한량이 없을 것,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내 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가서 나려고 하는 이는 열 번만 내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가서 나게 될 것, 보리심을 내어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발하여 내 국토에 가서 나려는 이는 그가 죽을 때 내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 사람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고 내 국토에 가서 나는 보살들은 모두 나라연천()과 같은 굳센 몸을 얻게 될 것, 내 국토는 땅 위나 허공에 있는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시냇물이나 연못이나 화초나 나무나 온갖 물건이 모두 여러 가지 보배와 향으로 되어 비길 데 없이 훌륭하며, 그 물건들에서 나는 향기는 시방세계()에 풍겨 그 냄새를 맡는 이는 모두 거룩한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될 것이다.

또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이 내 광명에 비추기만 하면 그 몸과 마음은 부드럽고 깨끗하며 하늘 사람보다도 뛰어날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사람들은 옷입을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옷이 저절로 몸에 입혀지되 바느질한 자취나 물들인 흔적이나 빨래한 자국이 없을 것, 다른 세계 보살로서 내 이름을 들은 이는 부처님 법에서 물러나지 아니할 것 등이다.

이와 같은 본원들은 일체중생을 건지려는 보살정신의 극치이다. 아미타불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완성은 물론, 그 정신적 완성의 환경인 국토의 장엄, 물질적인 완성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어떠한 신앙보다도 이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6, 7세기경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미타신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신라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 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공로자로는 원효()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토교를 보급하기 위해 신라의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저서들을 남겼다.

원효 이후의 많은 신라 교학승()들도 미타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삼국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전몰자들의 왕생을 비는 기도는 자연히 아미타불에 귀의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미타불상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미타불 [阿彌陀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석가모니불

인도의 카필라(Kapila)국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의 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부인은 그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돌아가고 그 후 태자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장하여 이웃 나라의 야쇼다라 공주를 태자비로 삼고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그러나 젊은 날의 태자는 평범한 왕자로서 일생을 살기보다는 삶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 더 골몰했다. 그러던 그는 29세가 되던 해의 어느날 마침내 출가를 결행하였다.

출가한 뒤 6년여 동안 여러 스승을 찾아 다니며 배우기도 하고 혹독한 고행도 해 보았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수행방법을 중도로 바꾸어 부다가야(Buddha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조용한 명상에 들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지 이레 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수행자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마침내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된 것이다.

그 후 부처는 베나레스의 교외인 녹야원으로 가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들을 대상으로 초전법륜을 말하고, 45년 동안 인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하며 교단을 일으켰다.

노쇠해진 부처님은 80세가 되던 해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고요한 열반에 드셨다. 마지막 설법에서 석존은 “자신이야말로 등불이며 법이야말로 등불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긴다. 이 점은 불교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부처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나아가 그는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내고자 한량없는 지혜와 무한한 자비심을 나타내 보인 도덕적 완성자였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의 신행대상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다만 그 부처님은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는 제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깨달은 진리의 발견자로서, 존경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찬사는 그를 지칭하는 열 가지 별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실로 그는 고귀한 자[], 존경할만한 자[], 완전한 현자[], 지혜와 덕행의 완성자[], 다시는 생사해[]에 나오지 않을 복된 자[], 세상의 일체를 다 아는 자[], 제신과 인간의 스승[], 인간의 자기극복에의 독보적 안내자[調], 그리고 불세존()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아 아는 자’의 의미와 ‘그 진리를 뭇 중생들을 위해 널리 펴신 분’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불교란 바로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행양식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멸 후 불교 교단 내에서는 새삼 부처님이란 누구인가, 불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를 둘러싼 견해차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불타관은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라는 불교의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로 변천되었다.

5세기 무렵 북인도에서 출생한 아상가(무착)와 바수반두(세친) 형제의 저작으로 알려진 일련의 유가행 유식학의 논서들에서 삼신설()로 정리되면서 일단 이론적으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를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논서들로는 미륵송(), 세친석()으로 알려진 ≪대승장엄경론≫과 ≪구경일승보성론≫을 들 수 있다.

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자성신(,svābhāvika-kāya)·수용신(, Sā○bhogika-kāya)·변화신(nairmā○ika-kāya)이며, 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실불(svābhāvika-kāya)·수법락불(, sāmbhogika-kāya)·화신불(nairmā○ika-kāya)과 법신(dharma-kaya)·보신(sabhoga-kāya)·화신 또는 응신(nairmā○ika-kāya)이 곧 그것이다.

이 두 논서에 언급되고 있는 삼신은 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적으로 중복되는 개념이다. 물론 내용으로는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이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이라고 이름한 ≪보성론≫의 삼신관을 따르고 있으나 이론적 명확성은 오히려 ≪장엄경론≫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엄경론≫의 설명에 따르면 “자성신과 수용신과 변화신은 실로 모든 부처의 몸을 구분한 것이며, 제1신은 다른 두 신의 소의()이다.”.

이를 다시 세친은 “모든 부처에는 삼신이 있다. 자성신은 법신으로서 전의()를 특질로 한다. 수용신은 이에 의해 회중륜()에서 법의 수용을 이루는 것이며, 변화신은 그 변화에 의해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섭대승론≫은 “이 중에 자성신이란 여러 여래의 법신이다. 모든 법에 있어서 자재전()의 소의()이기 때문이다. 수용신이란 부처의 각종 회중륜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법신을 소의로 하여, 청정한 불토와 대승의 법을 향수()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신이란 법신에 의지하여 도솔천에 있는 천궁()에서 전생()하고, 태어나고, 욕심을 행하고, 출가하여 외도()가 있는 곳에서 수행하고, 고행을 이루고, 보리를 증득하고, 법륜을 굴리고 대열반에 들어 가기 때문이다.”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3의 변화신이 바로 석존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신설의 상호관계는 깨달음의 본체로서 법신과 수많은 공덕의 과보로 받은 몸이라는 의미의 보신, 그리고 지혜와 자비심을 본질로 하는 ‘깨달음’을 중생 이익을 위해 회향하려는 목적에서 현세로 몸을 나투신 화신 또는 응신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관계를 ≪화엄경≫이나 ≪대승기신론≫ 등에서는 좀더 알기 쉽게 체()·상()·용()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즉 진여의 체는 법신으로, 상은 보신으로, 용은 화신 또는 응신으로 대비해서 해석하려는 입장이 곧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단 화신불로 이해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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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약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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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약천사 

 

 

성탄절이 다가온다고 종교를 떠나서 절에서도 현수막과 함께 산타와 X-mas트리가 성탄을 축하한다. 

 

종교를 초월하는 이런 것들은 좋아보인다. 

 

3층 높이의 거대한 불상...수인이 저렇게 된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이랬지! ㅎ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왼쪽에 있는 부처님과 오른쪽 있는 부처님의 수인이 다른다....찾아보니 약사여래불이다 

 

3층에서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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